박경리 작가님의 주요 테마는 여인의 비극적 운명을 다루는데 '김약국의 딸들' 역시 김약국집의 다섯 딸들의 기구한 삶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더불어 그들의 어머니인 한실댁의 더 기구한 삶과 함께)
남아선호 사상이 팽배한 시대에 딸만 다섯인 김약국 집안이 가세가 기울면서 그 딸들의 삶도 같이 기울어진다. 책의 말미에 둘째 딸이 지인에게 자신의 가족사를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있다.
"저의 아버지는 고아로 자라셨어요. 할머니는 자살을 하고 할아버지는 살인을 하고, 그리고 어디서 돌아갔는지 아무도 몰라요. 아버지는 딸을 다섯 두셨어요. 큰딸은 과부, 그리고 영아 살해 혐의로 경찰서까지 다녀왔어요. 저는 노처녀구요. 다음 동생이 발광했어요. 집에서 키운 머슴을 사랑했죠. 그것은 허용되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부터가 반대했으니까요. 그는 처녀가 아니라는 험 때문에 아편쟁이 부자 아들에게 시집을 갔어요. 결국 그 아편쟁이 남편은 어머니와 그 머슴을 도끼로 찍었습니다. 그 가엾은 동생은 미치광이가 됐죠. 다음 동생이 이번에 죽은 거예요."
죽은 넷째 딸도 죽음이 너무나 억울하다. 남편에게는 사랑받지 못하고 시아버지에게 욕보이고 그래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남편에게 도망을 갔다가 풍랑을 맞아 죽어 버리고.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너무나 불편하고 답답하였다. 왜 이리 삶이 힘들고 어렵고 억울하고 답답한지.
그 시대 여자들에게는 남편을 누구를 만나느냐에 의해서만 자신의 삶이 정해지는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말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혼 전은 물론 사별을 한 뒤에도 정조를 지켜야 하는 사회 관념으로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사회의 관념과 강압에 이끌려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이 정해졌다. 그렇다 한들 좀 잘 살고 행복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러면 소설이 되지 못하겠지. 힘들고 기구하고 어려워야 이야기가 되겠지.
하지만 그래도 답답한 사회의 모습과 힘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는 그 시대의 삶은 슬프기 그지없다.
박경리 작가님은 기구한 운명으로 끝내지 않고 새로운 출발을 암시하며 끝내고자 소설의 마지막 장의 제목은 '출발'이다. 다섯 딸 중 용빈과 용혜만이 그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울로 떠나며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용빈과 용혜만이 교육을 받았던 딸이었고(그나마 용혜는 중도에 그만뒀지만 다시 교육을 받기 위해서 용빈과 서울로 향한다) 그런 교육을 받고 의식을 깨침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얻었던 것이다.
책을 읽고 나면 가슴이 답답하지만 그렇만큼 몰입이 잘되고 재미있고 나를 이야기에 완전히 동화 시켰기 때문에 느꼈던 감정이다. 즉 너무 재미있는 책이다.
문체가 그 시대의 어투와 통영 지역의 사투리로 쓰여서 모르는 단어나 뜻을 100%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들이 간혹 나왔지만 책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오히려 깔끔한 요즘의 말투와 표준어로 쓰였다면 그 시대의 삶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살려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조만간 TV 드라마로만 보았던 토지를 읽어 보려고 한다. 대하소설은 태백산맥, 아리랑, 삼국지 외에는 읽은 것이 없는데 토지를 여름 전에는 반드시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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